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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연금술

증류수와 미네랄 두 가지로 완성하는 '바리스타 워터' A to Z

by info20250806 2025.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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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완벽한 캔버스를 향한 열망: 바리스타 워터의 탄생

세계적인 바리스타 챔피언십 무대 위, 한 잔의 커피를 위해 수많은 선수들이 각자 준비해 온 물병을 꺼내 드는 모습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 이는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커피 맛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추출 변수 통제의 정점에 있는 행위입니다. 최고의 바리스타들은 알고 있습니다. 원두, 그라인더, 머신을 완벽하게 통제하더라도, 물이라는 변수가 통제되지 않으면 결코 완벽한 일관성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바리스타 워터라는 개념이 탄생했습니다. 바리스타 워터란, 커피 추출에 최적화된 미네랄 성분과 농도를 갖도록 인공적으로 설계된 '커피만을 위한 물'입니다. 이를 직접 만드는 것은 언뜻 복잡하고 어려운 화학 실험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본질은 놀라울 정도로 단순합니다.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순백의 캔버스(증류수) 위에, 맛의 핵심이 되는 단 두 가지의 물감(미네랄)만을 사용하여 완벽한 그림을 그려내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 이 글에서 제시할 DIY 레시피는 바로 그 A to Z를 담은 완벽한 가이드가 될 것입니다. 이 글을 마스터하고 나면, 당신은 더 이상 장소나 시간에 따라 변하는 물맛에 휘둘리지 않고, 언제 어디서든 당신이 원하는 바로 그 맛을 정확하게 재현해 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될 것입니다.

 

 

 

2. 맛의 설계도: 두 가지 핵심 미네랄의 역할

바리스타 워터를 구성하는 핵심 재료는 단 두 가지, 바로 황산마그네슘(엡솜염)과 탄산수소나트륨(베이킹소다)입니다. 이 두 가지 미네랄은 각각 커피 맛의 기둥이 되는 경도(GH)와 알칼리도(KH)를 독립적으로 제어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첫 번째 기둥인 '경도'는 황산마그네슘(엡솜염)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경도는 물의 '추출력'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습니다. 특히 마그네슘 이온은 커피 원두 안에 잠자고 있는 다채로운 과일 풍미와 꽃향기, 기분 좋은 산미 성분들과 강력하게 결합하여 물속으로 끄집어내는 역할을 합니다. 즉, 경도가 충분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원두라도 그 잠재력을 모두 표현하지 못하고 밋밋하고 평면적인 맛이 나게 됩니다. 황산마그네슘은 바로 이 '맛의 추출기' 역할을 하는 가장 중요한 재료입니다. 두 번째 기둥인 '알칼리도'는 탄산수소나트륨(베이킹소다)이 담당합니다. 알칼리도는 추출된 맛의 '밸런스'를 잡는 역할을 합니다. 커피의 산미는 매력적이지만, 아무런 제어 장치가 없으면 날카롭고 공격적인 신맛으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이때 탄산수소나트륨에서 나온 탄산수소이온이 완충제(Buffer) 역할을 하며 산미를 부드럽게 감싸 안아, 공격적인 신맛이 아닌 잘 익은 과일의 복합적인 산미와 부드러운 질감으로 느껴지게 만듭니다. 즉, 탄산수소나트륨은 '맛의 조율자'인 셈입니다. 이처럼 두 미네랄의 역할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바리스타 워터 제조의 첫걸음입니다.

증류수와 미네랄 두 가지로 완성하는 '바리스타 워터' A to Z

 

 

3. 범용 레시피: 농축액 제조부터 최종 희석까지

이제 가장 중요한 실전 단계, 농축액 제조 및 최종 혼합 과정입니다. 이 방법은 매번 소량을 계량하는 번거로움을 줄이고, 장기간 일관된 품질을 유지하는 데 가장 효과적입니다. 먼저 깨끗하게 소독된 1리터 용량의 유리병 두 개와 0.01g 단위까지 측정 가능한 정밀 저울, 그리고 모든 미네랄이 제거된 증류수를 준비합니다. 첫 번째, '경도(GH) 농축액'을 만듭니다. 1리터 용기에 증류수 1리터를 담고, 정밀 저울을 이용해 황산마그네슘(엡솜염) 25g을 정확하게 계량하여 넣은 후, 가루가 완전히 보이지 않을 때까지 충분히 흔들어 녹여줍니다. 병에는 'GH' 또는 '경도'라고 명확히 표기합니다. 두 번째, '버퍼(KH) 농축액'을 만듭니다. 다른 1리터 용기에 증류수 1리터를 담고, 탄산수소나트륨(베이킹소다) 15g을 정확히 계량하여 동일한 방법으로 완전히 녹여줍니다. 병에는 'KH' 또는 '버퍼'라고 표기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두 개의 농축액은 냉장 보관 시 수개월간 사용 가능합니다. 이제 최종 바리스타 워터를 만들 차례입니다. 가장 널리 쓰이는 범용 레시피의 희석 비율은 다음과 같습니다. 1리터의 최종 커피 물을 만들기 위해, 깨끗한 용기에 '경도(GH) 농축액' 3.4g(약 3.4ml)과 '버퍼(KH) 농축액' 2.8g(약 2.8ml)을 넣고, 나머지 용량을 증류수로 채워 총량을 1000g(1리터)으로 맞춰줍니다. 이 레시피는 약 85ppm의 경도와 42ppm의 알칼리도를 가진, 대부분의 커피에 훌륭한 균형감을 선사하는 이상적인 물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4. 응용과 변주: 원두의 특성에 물을 맞추다

앞서 소개한 범용 레시피는 그 자체로도 훌륭하지만, 바리스타 워터 DIY의 진정한 힘은 '맞춤화'에 있습니다. 당신이 가진 원두 특성에 맞춰 물의 레시피를 미세하게 조절함으로써, 그 원두가 가진 잠재력을 200% 끌어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에티오피아 예가체프나 파나마 게이샤처럼 꽃향기와 섬세한 산미가 특징인 원두를 푸어오버 방식으로 추출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만약 커피 맛이 다소 밋밋하고 향이 약하게 느껴진다면, '버퍼(KH)' 농축액의 양을 기존의 2.8g에서 2.0g 정도로 줄여 산미를 억제하는 힘을 약화시킴으로써 숨어있던 꽃향기와 과일 풍미를 더욱 화사하게 피워낼 수 있습니다. 반대로, 브라질이나 수마트라 원두처럼 묵직한 바디감과 단맛이 특징인 원두를 에어로프레스로 추출하는데, 쓴맛이 강하거나 질감이 가볍게 느껴진다면 어떨까요? 이때는 '경도(GH)' 농축액의 양을 3.4g에서 4.0g 정도로 늘려 추출력을 강화하고 바디감을 보강하거나, '버퍼(KH)' 농축액의 양을 3.5g 정도로 늘려 쓴맛을 부드럽게 감싸고 단맛을 증폭시키는 레시피 조절을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원두의 특성과 추출 방식을 이해하고 그에 맞춰 물을 디자인하는 것은, 마치 셰프가 메인 재료에 따라 소스를 달리하는 것과 같은 고도의 기술이자 창조적인 과정입니다.

 

 

 

5. 바리스타의 마인드셋: 일관성을 넘어 완벽을 향해

바리스타 워터를 직접 만드는 것은 단순히 물을 섞는 행위를 넘어, 프로페셔널 바리스타의 마인드셋을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입니다. 그 핵심은 바로 '완벽한 반복성'의 추구입니다. 어제 마셨던 인생 커피를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1년 뒤에도 정확히 똑같이 재현할 수 있는 능력. 이것이 바로 전문가 수준의 품질 관리이며, DIY 워터는 이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입니다. 제조된 물의 최종 TDS(총 용존 고형물)를 TDS 측정기로 확인하여 항상 목표 범위(예: 120~150ppm) 안에 있는지 점검하는 습관은 일관성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또한, 물이라는 거대한 변수가 완벽하게 통제되었기 때문에, 당신은 이제 그라인더 분쇄도 한 칸의 변화, 물 온도 1℃의 차이가 맛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온전히 집중하며 느낄 수 있게 됩니다. 이는 당신의 미각 훈련 속도를 비약적으로 향상시킬 것입니다. 결국 이 모든 A to Z 과정은 단순히 '맛있는 물'을 만드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변수를 통제하고, 결과를 분석하며, 끊임없이 개선점을 찾아 나서는 과학자이자, 재료의 잠재력을 극대화하여 최고의 결과물을 창조하는 장인의 태도를 배우는 것입니다. 그 태도를 갖추었을 때, 당신의 홈 브루잉은 비로소 취미를 넘어 하나의 '예술'의 경지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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